역사/국가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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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이씨광릉부원군파묘역
- 종목서울특별시유형문화유산 제 90호 (서울)
- 명칭광주이씨광릉부원군파묘역(廣州李氏廣陵府院君派墓域)
- 수량/면적분묘12基, 석물 41基, 토지 2,279.8㎡
- 지정일1993.04.03
- 소재지서울 강동구 암사동 산12외
- 소유자광주이씨광릉부원군파종회
- 관리자광주이씨광릉부원군파종회
- 연락처강동구 문화예술과 02-3425-5250
조선 세종 때부터 연산군에 이르기까지 7명의 왕을 섬기면서 도덕 정치를 실천한 광릉부원군 이극배(1422-1495)와 그 후손들의 묘역이다. 이극배는 세종29년(1447)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그해 식년 문과 정과로 급제하였다.승문원 부정자로 관직을 시작하여 영의정에 대배를 받았다세조때 좌익공신 3등에 녹훈되었고 광릉군에 봉해졌다. 3도(경상도, 경기도, 평안도)에 관찰사를 역임하였고, 성절사로 명나라에 6번이나 다녀왔으며, 그 뒤 병조참판과예조참판 집현전 제학을 거쳐서, 세조5(1459)북방의 야인 정벌 때 신숙주의 종사관으로 출정하여 야인들을 정벌하였다. 이후 이조, 병조, 예조, 형조, 호조판서를 두루 역임하였다. 특히 3조(세조, 예종, 성종)에 걸쳐서 병조판서를 지냈으며, 이후 의정부 우참찬(예종1)으로 승진되었고, 성종1년(1470)의정부 좌참찬 겸 병조판서로 제수되었다. 성종2년(1471)에 전라도에 가뭄과 수해로 백성의 삶이 도탄에 빠져 허덕일 때 진휼사로 나아가 진력구제하였다. 이때 공로로 순성명량좌리공신으로 책훈되었고 성종10년(1479)에 승록대부 영증추부사에 올랐으며, 광릉부원군으로 봉군 되었다. 성종16년(1485) 우의정에 오르고, 나이 70세에 이르러 관례에 따라 사직서를 올리니 왕은 이극배를 위로하고 궤장을 하사하였다. 이후 성종24년(1493)에 영의정에 제수되고 연산군1년(1495) 3월에 사임하였다. 이후 3개뤌 만에 노환으로 서거하였다.
- ※ 출처 : 광주이씨 광릉부원군파 종회
찾아오시는 길
지하철 | 5호선 명일역 2, 3번 출구, 고덕역 1번출구 1.5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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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 강동05, 3412번(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앞 하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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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 (동산문화재과 ☎042-481-4926)
- 경찰청 (☎02-36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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