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상단메뉴 가기
  • 역사/문화재

  • 우리가 만드는, 우리가 즐기는,
    함께 어우러지는 강동구
  • 강동구의 관광명소! 테마별로 즐기세요!

지명유래

유래

  • 게내의 아래쪽에 위치한 데서 하일동이라 불리던 곳을 주민의 민원으로 강일동으로 바꾼 데서 유래됨
강일동
  • 강일동은 상일동과 하일동의 사이를 흐르는 게내〔해천(蟹川)〕의 아래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하일동이라 불렀던 곳이다.
  • 그런데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동 이름에 아래 ‘하(下)’자가 들어가 있어 발전이 더디고 꼴찌 동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주민들이 집단 민원을 제기하여 2000년에 강일동으로 명칭을 바꾼 데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 서울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동족 마을 가운데 하나인 강일동의 벌말(평촌)마을은 산신제의 전통을 이어가며 동족마을로 남아 있다.

옛지명

옛지명
옛지명 설명
가래여울(가려울, 추탄) 한강 여울가에 있는 마을, 강가에 가래나무가 많이 있었으므로 가래여울 또는 가려울이라고 하는데 백제 때부터 요새지였다고 함

한자명으로 추탄(楸灘)이라고도 하는데, 인조때 영의정 오윤겸이 이곳에 살면서 그 호를 추탄이라 함
벌말(큰말, 평촌) 마을이 벌판 한가운데 있으므로 벌말이라고 불렀다고 하고, 여러 마을 중 가장 큰 마을이라 하여 큰말이라고도 함
강매터 인조 때 강매란 사람이 살았기 때문에 붙여짐
건너말 벌말 건너에 있는 마을
구석말 마을이 구석진 곳
능골 능을 모실만한 곳
말우물(두정곡) 네모가 져서 말(옛날 곡식 등을 되는 기구)의 모양과 같이 된 우물이 있었으므로 말우물 또는 한자명으로 두정곡(斗井谷)이라 함
  • ※ 자료발췌 : 강동구지 (江東區誌, 2002), 서울지명사전(2009)

유래

  • 게내(해천)의 위쪽에 있는 데서 유래됨
상일동
  • 상일동 동명은 상일동과 강일동의 사이를 흐르는 게내〔해천(蟹川)〕의 위쪽에 있는데서 유래되었다.

옛지명

옛지명
옛지명 설명
게내 게냇가에 있는 마을 이므로 게내 혹은 한자명으로 해천(蟹川). 게내는 금암산(金岩山)에서 발원하여 가려울로 들어가는 내인데, 게가 많이 있었으므로 게내라 하였고, 현재 고덕천으로 불림
게내안말 게내안쪽에 있던 마을
닥밭재 예전에 닥나무(한지의 재료로 쓰임)를 많이 심은 밭이 있었던 산
동자골 명종때 승 보우가 이곳에 절을 짓고 동자부처를 모셨다하여 지어졌으며 동자골 또는 동자곡이라 함
  • ※ 자료발췌 : 강동구지 (江東區誌, 2002), 서울지명사전(2009)

유래

  • 명일원이라는 숙소를 두고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해 주었던 데서 유래됨
명일동
  • 명일동 동명은 고려 성종 11년(994) 이곳에 명일원(明逸院)이라는 숙소를 두고 출장하는 관리나 여행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제공해 주었던 데서 유래되었다.
    명일원 · 원텃골이라고도 하였다.

옛지명

옛지명
옛지명 설명
간낫골 원터 건너에 있는 마을
염주골 염주사라는 절이 있었던 마을
명일리 원텃골
건너말 염주골 건너쪽에 있는 마을
샘말 원터골과 고덕리에 있는 마을
샛말 원터골과 염주골 사이에 있는 마을
큰골 큰 산 밑에 있는 마을
행길 큰 길가에 있는 마을
  • ※ 자료발췌 : 강동구지 (江東區誌, 2002), 서울지명사전(2009)

유래

  • 이양중이 조선 건국을 반대하여 굳은 절개를 지켜 덕이 높은 인물로 추앙받았던 데서 유래됨
고덕동
  • 고덕동 동명은 고려 말에 형조참의를 지낸 이양중(李養中)이 조선 건국을 반대하여 이곳에 와서 숨어 살면서 벼슬 제의도 거절하는 굳은 절개를 지켜 주위로부터 덕이 높은 인물로 추앙받았던 데서 유래되었다. 또 조선시대 지명인 고다지동(古多只洞)이 음운변동으로 이루어졌다고도 한다.

옛지명

옛지명
옛지명 설명
가재울(가재골) 가재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
고더기 고덕리가 변하여 붙여진 이름
고지봉(후미께) 인조 때 강매란 사람이 살았기 때문에 붙여짐
다리봉 동자골 뒤에 있는 산
미역골 고덕동에 있는 마을
바위바기 큰 바위가 박혀 있는 산
방죽말(방축종) 방죽이 있는 마을
비석말 어효첨의 비석이 있어 붙여진 이름
한우물 마을 가운데 있던 큰 우물
  • ※ 자료발췌 : 강동구지 (江東區誌, 2002), 서울지명사전(2009)

유래

  • 백중사 속칭 바위절이 있어 한자명으로 암사(岩寺)라 한데서 유래됨
암사동
  • 암사동 동명은 오늘날 산23번지 일대에 신라시대에 9개의 절이 있어서 구암사(九岩寺)라 하였고, 그중 백중사 속칭 바위절이 있어 한자명으로 암사(岩寺)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
  • 현재 암사동의 선사유적지가 있는 강변에는 한강 수로의 뱃길에서 배가 쉬어가거나 묵어 가던 곳이었다. 당시 이 마을은 구천면내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마을로, 농사를 지었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직접 배를 부리거나 배를 부리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어서 현금의 유통이 빨랐고 구천면내의 다른 마을에 비해 비교적 부요했다.

옛지명

옛지명
옛지명 설명
갯물(갯모루) 개(한강) 모퉁이에 있는 마을이므로 갯모루 또는 갯물이라 함
넘말(새능말) 산너머 있는 마을. 인조때 임숙영의 묘를 크게 써서 새능말이라 함
볕우물 백제 온조왕 36년(18)에 토성을 쌓고, 볕우물토성이라 하였으므로 볕우물 또는 양정이라 함
복지말 1957년에 이석겸(李錫謙), 김재홍(金在弘) 두 사람이 월남 피난민들을 위하여 새로 농장을 만들고 복을 받는 마을이란 뜻으로 복지말이라 함
부처고개 암사동에 있는 고개로 돌부처가 있어 부처고개 또는 불현(佛峴)이라 함
섬 말 예전에 마을 앞에 못을 파고 섬을 만들었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며 한자명으로 도촌(島村)이라 함
여뭇골(우묵골,우목골) 성종때 직제학을 지낸 정선근이 부모묘소 밑에다 노막을 짓고 6년간 시묘하다가 성종이 돌아간 후 다시 3년상을 입었던 곳이라 하여 지어졌으며 우묵골 또는 우목골이라고도 함
점 말 자기를 만드는 점(店)이 있었는데 백제시대 때부터 궁궐에 쓰일 그릇을 구워냈던 곳으로 광주분원과 함께 도자기 생산으로 유명함
참앞 하진참(下津站) 앞에 있는 마을이므로 참앞 또는 참전이라 함. 참(站)이란 길을 가다 쉬는 곳으로, 하진참은 광나루에 있었던 뱃참임. 육상교통이 발달하기 전까지 서울로 들어오는 모든 물화의 운반이 한강을 통하여 다녔으므로, 이곳에 참을 대게 함
토막나루 구리시 토막리로 건너가는 나루로 나무토막으로 배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고 해서 붙은 명칭
  • ※ 자료발췌 : 강동구지 (江東區誌, 2002), 서울지명사전(2009)

유래

  • 민가 수 천 호가 살만한 지역이 되리라는 풍수지리설에 따른 데서 유래됨
천호동
  • 천호동 동명은 1963년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곡교리를 옛날부터 이곳이 인가 수 천 호가 살만한 지역이 되리라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개칭한 데서 유래되었다.

옛지명

옛지명
옛지명 설명
곡교리(곡교, 곱은다리, 가운뎃말) 마을앞에 굽은 다리가 놓여 있으므로 굽은다리 또는 한자명으로 곡교라고 하였으며, 여러마을 중에 한가운데에 있었으므로 가운데 마을이라고도 함
당말 마을뒤에 신당이 있었으므로 당말 또는 한자명으로 당촌이라고 함
벽동말 벽오동 나무가 있었으므로 벽동말이라 함
  • ※ 자료발췌 : 강동구지 (江東區誌, 2002), 서울지명사전(2009)

유래

  • 풍납토성 안쪽에 마을이 위치한데서 유래됨
성내동
  • 성내동은 풍납토성 안쪽에 마을이 위치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안말 · 성안말 또는 성내리 등으로 부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옛지명

옛지명
옛지명 설명
벌말 벌판에 있는 마을
골말 벌말 동쪽 골짜기에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
분토골 갈분처럼 흰 흙이 많이 있다는데서 붙여진 이름
붉은더기 벌말 서쪽에 있는 산마루로서 붉은 흙이 많다해서 붙여졌음
성피나리 안말에서 둔촌으로 가는 고개
왁새 마루턱 벌말 북쪽에 있는 산에 왁새가 있었음
늘근너미 벌말 남쪽에 있는 들에 넓은 늪이 있었음
성안말 성내동
  • ※ 자료발췌 : 강동구지 (江東區誌, 2002), 서울지명사전(2009)

유래

  • 천재지변이 없는 살기 좋은 길한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됨
    마을 모양이 나뭇가지처럼 길다 하여 붙은 ‘기리울’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됨
길동
  • 길동 동명은 마을로부터 강이 멀리 떨어져 있고 주위에 높은 산이 없기 때문에 물난리 또는 산사태 등의 천재지변이 없는 살기 좋은 길한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일설에는 마을 모양이 나뭇가지처럼 길다 하여 붙은 ‘기리울’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옛지명

옛지명
옛지명 설명
건너말 응달말 건너쪽에 있는 마을
골말 마을이 산골짜기에 있음
기리울(吉里) 길동을 가리킴. 길동의 모양이 나뭇가지처럼 길다하여 붙여진 이름
선린촌 선린동
아랫말 골말 아랫쪽에 있는 마을
응달말 응달쪽에 있는 마을
  • ※ 자료발췌 : 강동구지 (江東區誌, 2002), 서울지명사전(2009)

유래

  • 이곳에 은거했던 이집의 호 둔촌에서 유래됨
둔촌동
  • 고려말의 문인·학자로 광주(廣州) 이씨의 시조이며 문장과 절개로 유명한 둔촌(遁村) 이집(李集)이 지금의 일자산에 토굴을 파고 잠시 거주한 사실이 있었으므로 그의 호 둔촌(遁村)에서 둔촌동(遁村洞)이라고 동명이 유래되었다.

옛지명

옛지명
옛지명 설명
굴바위 둔촌동 일자산 서남쪽에 있는 굴로된 바위
둔 골 둔촌동 뒤에 있는 바위로 된 굴. 이집이 이곳에 은거하여 붙여진 이름
둔촌약물 둔촌에 있는 약물 (둔촌약수)
새우고개 둔촌동 남쪽에 있는 고개
삿갓바위 굴바위 위에 있는 마을
샛 굴 양달말과 응달말 사이에 있는 골짜기
원숫골(절골. 온숫골) 일자산 밑에 있는 골짜기
응봉(매동) 일자산에 있는 봉우리
일자산 둔촌동 뒤에 있는 산
밖둔굴 둔굴 바깥쪽에 있는 마을
아랫말 아래쪽에 있는 마을
안둔굴 둔굴 안쪽에 있는 마을
약수터 호초우물 가에 있는 마을
  • ※ 자료발췌 : 강동구지 (江東區誌, 2002), 서울지명사전(2009)
OPEN 공공누리 강동구청이 창작한 지명유래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변경금지+상업적이용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페이지 내용에 만족하셨습니까?
이 의견은 만족도 확인에만 사용됩니다.
평가하기
관리부서 : 문화예술과 문화관광팀 TEL : 02-3425-5250 수정일 : 2019-05-20 14:59:48